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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람들
名匠 78명이 우리마을에… "참말로 고맙심더"
칠곡=김경은 기자
[경북 칠곡 명원마을 온 전국 匠人]
'대한민국명장회' 주최, 3번째 사회 환원
주민 위해 용접·제과 등 재능 기부, 칼수선·미용이 최고 호응 얻어
"참말로 멋있대이!" "우리 마을에도 얼굴이 생겼네!"
지난 28일 아침 경북 칠곡군 약목면 명원마을 입구. 주민 20여명이 '교1리 명원마을'이란 글자가 새겨진 마을표지석 앞으로 몰려와 감탄을 쏟아냈다. 이 표지석은 박종병(57) 석공예 명장이 경북 영천 작업실에서 닷새에 걸쳐 만들어 이날 아침 트럭에 싣고 왔다. 참외는 이 마을의 특산품. 그래서 표지석 윗부분에 금칠한 참외 모형 두 알을 새겨넣었다. 박 명장은 "백년 천년 굳건히 서서 마을에 복을 가져다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 기능을 가진 명장(名匠) 7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한민국명장회가 주최하고, 고용노동부·한국산업인력공단이 후원한 이날 행사는 '명장들의 사회 환원'이 취지다. 재작년 여름 경남 하동군 청암면, 작년 가을 경북 고령군 다산면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다. 최창묵(59·시계수리) 명장회 회장은 "두 달 전부터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조사해 준비해왔다"며 "나라에서 준 '대한민국 명장'이란 칭호에 걸맞게 사회적 책무를 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교리 동장 이명수(62)씨는 "동장(洞長) 된 지 6년짼데 이렇게 큰 행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76농가에 152명이 사는데 그중 환갑 넘은 사람이 100명이라예. 할배들 돌아가시고 혼자 사는 할매들 많아서 바퀴 하나 뿌아져도 못 고치지예. 말도 몬하게 고맙심더."
지난 28일 대한민국 각지의 전문 명장 78명이 경북 칠곡 명원마을에 모여 봉사활동을 했다.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타고 모인 명장들은 이·미용, 시계·농기계·보일러 수리, 페인트칠, 칼수선, 도장(塗裝), 용접, 제과, 창호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나누었다. 대박 난 곳은 칼 수선과 미용이다. 묵묵히 칼을 가는 주용부(74) 단조 명장 앞에 주민들이 맡긴 칼과 낫 50여 자루가 수북이 쌓였다. 이정구(65) 양복 명장이 신청자 접수를 하고, 김용찬 잠수 명장이 "칼 갈아요, 칼!" 홍보를 맡았다. 주민 김덕순(65)씨가 손잡이 끝에 마늘이 덩어리째 붙은 칼을 들고 왔다. "맘이 급해 갖고 마늘 찧던 채로 달려왔어예."
마을회관 앞 마당에 파마약 냄새가 알싸하게 퍼졌다. 동네 아낙네 30명이 그곳에 다 모였다. 한국 전통머리에 일가견이 있는 정매자 미용 명장이 머리를 자르고, 임호순·김진숙 미용 명장이 파마 롤을 말았다. 김 명장은 미스코리아들의 머리를 단장해왔다.장남주(85) 할머니가 열여섯째 손님으로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송월상 할머니가 명장들을 향해 "안 해 주고 가믄 안 됩니더"라고 외쳤다. 장만우(60)·최원희 이용 명장은 남성 주민들의 머리를 다듬었다.
평소 산업 현장에서 공사·보수 기술력을 발휘해온 명장들은 녹슨 대문과 허물어진 담장을 고쳐줬다. 마을 초입에서 800m 떨어진 윗동네에서는 30년간 방위산업 현장에서 현대 무기를 개발해온 김윤수(54) 제관(製管) 명장, 24년간 선박 자동용접 장치와 용접 재료를 생산해온 진윤근(43) 선박건조 명장, 36년간 공작기계와 방위산업 부품 국산화에 기여한 김병각(52) 컴퓨터응용가공 명장이 대문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붓질을 한 번에 싹 해야 해. 그래야 얼룩이 안 져." 세 명장은 "명장은 못 하는 거 없어야 한다"면서 땀을 뻘뻘 흘렸다. 주민 김종운(59)씨가 "쉬엄쉬엄 하소. 저래 땀이 나가 우짜노"라 하며 물을 건넸다.
온 마을이 새 대문을 다는 소리, 10년 된 보일러를 고치는 소리, 고장 난 농기계에 시동 거는 소리로 들썩였다. , 홍종흔(50) 제과제빵 명장은 서울에서 만들어온 크림빵을 나눠주고, 함영만(61) 무선통신 명장은 전기배선을 옮겼다. 명장들 배가 출출해질 때쯤 머리에 파마 비닐 캡을 두른 아낙들이 뽀얗게 익은 고기와 시원한 막걸리를 내왔다
최창묵 명장은 준비해간 벽시계 80개를 집집마다 걸고
활동은 오후 4시가 돼서야 끝났다. 작업 6시간 만에 명원마을에 활기가 가득했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낸 명장들은 마음에 보람 하나씩을 품고서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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